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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주체성, 그리고 위기지학


이 글은 책 '완벽한 공부법(지은이 : 고영성 작가, 신영준 박사)'에서 발췌하였다는 출처를 밝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 또는 공부에 확신이 서지 않거나 불안해한다. 왜 그렇게 불안하냐고 물으면, 대표적인 몇 가지 대답들이 있다. "이게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얼마나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끝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듯, 우리는 무엇을 하면서 매번 불안과 싸우며 만들어 낸 결과에 울고 웃는다.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우리는 불안함을 느끼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반대로 결과를 알고 있다면 그만큼 열심히 할지가 또 다시 의문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결과만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이 답을 '완벽한 공부법'을 통해 찾아본 결과,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도 잘 알지 못한다. 필자는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이 질문들을 통해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질문은 뻔하다. 1.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2. 나는 어떤 것을 공부해야 하는가? 3. 나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4. 나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공부해야 하는가? 5. 나는 어디서 공부해야 하는가? 6. 나는 누구와 공부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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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질문을 답변하기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의 현재 모습이다. 특히 '왜 공부를 하는가'조차도 대답하기 어렵다면, 그만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내 자신을 모른다면 주체적이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다. 즉, 무엇 하나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들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효율성도, 좋은 결과도 기대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게임을 할 때, 한번도 해보지 않은 캐릭터로 게임을 잘 할 수 있을까? 못할 수 밖에 없다. 게임은 그렇게 공략법을 보면서 캐릭터를 키워가면서 정작 우리는 우리 자식이 어떤 능력치를 가졌는지, 어떤 캐릭터인지 모른다. 특히 공부할 때는 그런 현상이 더 심해진다. '왜 공부하는지'에 대한 주체적인 대답을 듣기 힘들다. '시험때문에', '취업때문에'라는 외부로부터 생겨진 이유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주체적인 공부를 할 수 없을까? 방금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완공'에서 '메타인지'라고 정의한다. * 메타인지 : 알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 또는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것 메타인지와 공부는 매우 밀접한 관계이다. 예를 들어보자. EBS 제작팀은 0.1%학생과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업 성취도와 기억력의 상관관계>테스트를 한다. 25개 단어를 3초씩 듣고 외워야 하는 테스트였다. 사실 테스트 결과만으로는 8개 내외로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몇 개를 맞췄을지에 대한 예측 결과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0.1%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이 몇 개를 맞출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고, 일반 학생들은 아무도 그렇지 못했다. 이는 바로 메타인지의 차이다. 이와 같이 메타인지 능력은 공부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메타인지는 공부에서만 한정되지 않는다. 인생 전반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다. 종종 성공한 기업가들이나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이 부족하고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주체적인 삶을 꾸려나간다. 또한 요즘 청년들은 여행 또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그만큼 나를 아는 것과 주체성을 갖는 것은 공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간과한다. 당장 해야할 것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을 찾는 것보다도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는 것에 급급하다. 이것이 우리가 불안함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사실 그 전에 더 중요한 것이있다. 자신을 알아가기 전에 먼저 알아둬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을 믿는 믿음이다. 자신을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 전에 자신을 믿는 것이 시작이다. '완공'에 담긴 내용을 통해 알아보자. ㆍ믿음을 잃어버린 아이 미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토드 로즈라는 아이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심한 장난으로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어느 날은 중학교에서 집으로 전화가 왔다. 미술 시간에 악취가 나는 폭탄을 교실에 집어 던졌다는 것이다. 그런 친구를 좋아할리가 없었고 교내에서 당연히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았고,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없었다. 그는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었고 선생님에게 구제불능이란 말도 들었으며 항상 성적은 꼴찌에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시를 쓰는 숙제가 있었는데, 이 때 토드는 잘하고 싶은 마음에 3일을 밤을 새며 시를 만들었다. 그 시를 본 어머니는 만족스러워했고, 당연히 학교에서도 칭찬을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은 토드에게 F라는 낮은 점수를 주었다. 그 이유는 평소 구제불능에 꼴지였던 토드가 쓰기엔 너무도 수준 높은 시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이후 토드는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잘했다고 생각했고, 노력했지만 F라는 결과로 더 이상 자신의 노력과 재능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토드가 학교에서 자신에 대해 잃어버린 믿음은 세 가지다. 첫째, 기대(Expectation)다. 기대는 자신의 미래에 관한 믿음이다. 노력에 대한 배반으로 토드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더 이상 낙관할 수 없게 되었다. 둘째, 마인드셋(Mindset)이다.

마인드셋은 자기 존재에 관한 믿음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이다. 말썽꾸러기,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 구제불능 등으로 낙인찍힌 그는 자신을 그렇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이 발전할 수도 있다라는 희망조차도 갖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셋째,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다.

자기효능감은 특정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는 자기 능력에 관한 믿음을 말한다. 토드는 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할 수 없다라는 시선을 받았고 이런 상황에서 토드는 어떻게 자신을 믿을 수 있을까? 그렇게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토드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ㆍ기대 : 미래 결과에 관한 믿음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이자 세계적인 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m)은 1964년 동료인 스티브 마이어와 실험을 실행한다. 실험의 내용은 이렇다. 개들을 두 무리로 나누어 예고 없이 전기 충격을 가하며, 한 쪽에는

전기를 멈추는 패널을, 한 쪽에는 멈추는 패널이 없었다. 패널이 있는 곳에 있는 개들은 전기 충격이 오자 패널을 눌러 멈췄다. 그렇게 64번 정도의 전기 충격 끝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패널이 없었던 곳에 있었던 개를 패널이 있는 곳으로 보냈는데, 패널이 있어도 패널을 누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패널을 누르지 않는 개들은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에 빠진 것이었다. 이렇듯 믿음과 기대는 학습되어 생길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무기력이 단지 이 실험에서만 형성되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 학교에서, 삶에서 매일같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어떤 친구는 비교적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거나 또는 비관적이거나, 무기력하거나 활기차거나 할 것이다. 과연 그것들이 선천적인 것일까? 물론 어느정도 타고나기는 하지만 어떠한 경험이 누적되고 누적될 때마다 무기력이 학습된다면 그것은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게 된다. 하지만 다행히도 비관도 무기력도 학습될 수 있지만 낙관도 긍정도 학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틴 셀리그먼은 이를 '학습된 낙관주의(Learned optimism)'라고 불렀다. 연구에 따르면 학습된 낙관주의, 즉 학업 성취에 관한 기대가 높은 학생은 공부를 오랫동안 지속하고 도전적인 학습활동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또한 낮은 기대를 하는 학생들에 비해 높은 성취를 보인다는 것도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잃어버린 기대를 되찾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 이렇듯 믿음은 메타인지보다도 앞선 선행이 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또한 메타인지 능력보다도 먼저 학습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불안의 시작점을 찾은 셈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어떤 외부의 시선과 기준, 결과로부터 자신을 판단하고 그것이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면, 되돌아보자.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는지, 나는 나를 믿는지를 말이다. 위의 글에서 나온 실험과 사례를 통해 증명되었다. 믿음과 주체성(메타인지)은 개인의 발전과 아주 깊은 연관성이 있고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이 외에도 책에서 말하는 완벽한 공부법이 있다. 하지만 믿음과 주체성이 가장 앞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만큼 기본 전제이다. 그런 관점에서 필자가 속한 '프로젝트 위기'의 비전인 '위기지학'의 교육 문화를 만들기 위해 함께 활동하고 있고, 이 글을 통해 이제는 자신을 믿고, 주체성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도 비싼 학원을 다니고 힘들어도 무조건 참고 해내는 공부법만큼이나 효과적이고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또한 공부가 삶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처럼 믿음과 주체성은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장의 입시에도 시험에도, 취업 준비에도 자신을 믿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전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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