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상호 깨달음 7 ㅣ 가르침의 전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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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르치는 과정에 있어서 배우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야하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보폭 맞추기
제자를 동기화시키는 비결은 모르는 것을 제시하되 전혀 모르기보다는 실현될 수도 있는 것 같은 도전적인 과제를 주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 참신하지 않게, 시련을 주지만 실패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음을 흔들어 놓되 견딜만한 고통이 있는 어중간한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적당한 정동의 불일치를 유도함으로써 내재적 동기화가 성공을 거두었다면, 하화자는 자신이 대행할 수 없는 것을 제자가 자신의 힘에 의해서 해결하는 미묘한 현상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적당한 불일치를 보장하는 그 어중간한 지점의 유지는 상대의 반응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이기 때문에 언제나 까다롭습니다.
제자는 언제나 변덕스러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모르면 모른다고 투덜거리고 모르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불평합니다. 어렵게 그것을 알게 하고 난 후에 그것을 다시 제시하면 그것은 진부한 것이 아니냐고 뻐기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제자에게 제시하는 과제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중간지대, 즉 알쏭달쏭한 지점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 말은 하화가 진행되는 동안 제자의 흥미와 그들의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지대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진전상황에 맞추어 유동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단계의 상구에 작용했던 호기심과 도전의 대상은 그 목표의 달성과 더불어 효력을 상실합니다. 이제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목표설정이 요망됩니다. 적당한 보폭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보는 상구자의 능동적인 반응에서 나옵니다.
상구의 책임을 하화자에게 위임할 수 없는 것처럼 하화의 책임은 제자에게 위임될 수 없는 사항입니다. 만약 제자의 오류가 시정되지 못하거나 제자가 수동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그 원인과 책임의 일부는 하화자에게 돌려집니다. 그 일부의 책임을 떠맡는 것이 하화자인 우리의 과제입니다. 목표가 지나치게 낮거나 높은 것은 아닌가요? 속도가 너무 느리거나 빠른 것은 아닌가요? 하화자는 상대의 이해수준을 진단하고 그 이해수준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상구자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영역에 대한 안내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진인 우리가 기지의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부분이 그에게는 무지의 영역입니다. 하화자인 우리는 그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말이나 시범을 통해서 충고하고, 비판하고, 권장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해결의 단계별 유도
제자가 일시에 우리의 품위 수준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가정은 잘못입니다. 일회의 하화 활동으로 제자가 우리의 품위에 일치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화란 제자를 어떤 고정된 품위의 기준에 한꺼번에 일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 이르는 데 필요한 단계와 과정을 밟도록 돕는 것입니다. 한 단계의 품위진입만으로 제자를 우리가 가진 품위로 끌어올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자의 성장점인 차상품에의 연속적인 진입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의 상구를 촉구하고 교도하는 것에 해당합니다. 품차의 범위가 크면 클수록 그것은 여러 단계의 하화를 요구합니다. 조급하게 서둘거나 품위의 단계를 생략하고 뛰어넘게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높은 수준의 품위를 강요하면 제자의 상구 열정이 파괴되고 그는 억지로 우리의 품위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적응할 우려가 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선의 품위를 일시에 전달하겠다는 스승의 조급함은 오히려 그 과업을 어렵게 합니다. 그 대신 상대의 수준을 고려하고 거기에서부터 응분의 단계를 거치도록 배려해야만 합니다. 각 품위의 습득은 장시간을 요합니다. 한 품위를 높이는 데 몇 달,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화에 소요되는 기간은 하화자인 우리 자신이 제자의 위치에서 현재의 품위를 얻는 데 거친 경로와 소요된 시간을 회고하면 쉽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품위 차이가 크면 클수록 마치 사다리를 오르게 하듯이 그만큼의 많은 다단계적 하화가 축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화자는 자신에게는 이미 무효한 품위의 사다리를 이용하여 제자가 자신의 위치에 오르도록 촉구합니다. 그 수준의 조정은 품위의 위계와 발생적 순서를 고려하는 것입니다. 제자가 축차적으로 배워야 할 것의 순서와 하화자인 우리가 요구하는 것간의 알맞은 보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변신에 의한 자신의 상대화
자신에게 이미 하찮고 낮은 수준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일은 그렇게 유쾌한 일이 못됩니다. 그러나 하화를 위해서는 그것의 감내가 불가피합니다. 하화활동의 특징은 마치 산파의 경우처럼 하화자가 대신할 수 없는 활동을 상대가 하도록 끊임없이 격려하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화자인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이미 오류로 판명된 품위를 하화의 소재로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지식이건 그것은 진리에 이르는 알 수 없는 도정의 한 단계일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화자인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절대화를 경계하고 스스로를 상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현품이 가끔 드러내고자 하는 절대적 타당성을 포기하고 하강하여 상구자의 품위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는 자신의 품위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화자인 자신이나 상구자는 각자 어쩔 수 없는 현품적 제약을 갖는다는 현실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마주하는 제자의 품위에 맞춰서 자신의 모양을 자유자재로 변신하면서 그들의 도전적인 활동을 격려하고 환기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제자는 이미 우리가 거친 품위의 여정을 다시 반복해서 상구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그 과제는 하화자인 우리의 입장에서 지루한 작업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전해야 할 과제는 소재가 되는 품위의 수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품위를 보유하고 있지 못한 상대가 그것을 원만하게 습득하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하화자에게도 제자에게도 몹시 어렵고 도전적인 일입니다. 제자들은 모르는 것을 알아 가는 어려움이 있고, 우리에게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후자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상구에 따른 제자의 도전과 흥분을 재연시켜 주는 것입니다. 선진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시시한 문제일지 모르지만 제자는 실상 몹시 어려운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것과의 접촉에서 그가 경험하는 공포, 불안, 도전, 흥분, 즐거움, 열정의 순간에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연기력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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