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우페 엘베크 덴마크 카오스필로츠 설립자
*ANYSE2017에서 제작된 것으로, 행사 스캐치 및 다른 강연은 이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어 강연이지만 속기록은 한국어로 제공합니다.
속기록
나에 대한 살짝 소개를 드리겠다. 가끔씩 기조연설자를 보면 바로 연설을 하는데 저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우리에게 이력서가 있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나는 정치인이고, 당의 대표이기도 하다. 덴마크에서 녹색당을 이끌고 있다. 우리 부모는 나를 정말 휼륭하게 키워주었다. 멋진 교육자였다. 나는 자녀도 있고 손자도 있다. 나는 사업가이기도 하고 활동가이기도 하며 게이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렇게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나눌 필요가 있다. 앞으로 내가 이야기할 것을 다 까먹어도 우리의 전인격적인 것을 나누면 좋겠다.
내 인생에 대해 짧은 소개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되돌아보면 강조하고 싶은 것이 내가 성취하고자 한 목표는 단 한가지었다. 조금 있다 이야기해주겠다.
1982년에 전문가로서의 일을 처음 시작했다. 여기서 학생들을 얼마나 있는가? 교육자는 얼마나 많은가? 기업가는 얼마나 있는가? 사회활동가는? 정무전치인은? 교육자가 많네요. 이렇게 물어본 이유는 내가 말하고 싶은게 우리가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을 이야기하고 q&a를 하고 싶다. 시간이 많고, 깊은 질문을 해도 좋다. 질문거리를 생각해보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
1982년에 나는 젊은 사람이었다. 덴마크에서 아우로스라는 도시에 있었는데, 여기서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을 하는데,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려고 지원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때 인터뷰했던 사람들에게 날 뽑아주어서 감사하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나 혼자 지원했었다. 나는 그만큼 특이한 직업을 원하고 있었다.
지금 젊은이들은 많은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 한번도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다. 내가 가진 첫 직업은 아무도 원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재미있는 여정이 따랐고 지금은 덴마크 최고위층이 되었다. 인생은 정말 다양하게 펼쳐진다.
소외청년들을 돕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다양한 활동을 했고, 이를 FRONT RUNNER라고 이야기했다. 1988년으로 되돌아가보자. 그 때는 다른 사회였다. 아직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이고,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었다. 이때 제가 작은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다른 프로젝트 매니저 2명과 함께 있었는데, 다음 프로젝트를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근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23세쯤 되보이는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 들어왔다. 코펜하겐에서 왔다고 했다. 큰 도시에서 온 만큼 잘난척을 할 거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그녀가 “우리랑 놀아볼래?”라고 이야기했다. 내년에 15명 정도가 재밌는 프로젝트를 할거라고 이야기했다. 그 프로젝트는 소련을 침략하는 것이었다. 내년 9월에 국경을 넘어 소련을 침략해 모스코바까지 가서 락 콘서트를 열거라고 이야기했다. 2000명의 학생을 데리고 간다고 했는데, 비용은 어쩔려고 한 것일까? 돈이 엄청 많이 들텐데?? 돈이 있냐고 물어봤지만 돈이 없어도 아무튼 그렇게 할거라고 계획한다고 이야기했다. 23세살 여성이 소련을 침략한다니! 우리는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
1년 반간 우리가 열심히 준비해 소련 모스코바로 가게되었다. 경찰쪽에서 붉은광장이 아니라 대학광장에서 하라고 한 점은 있었지만, 정말 성공적이었다. 덴마크로 돌아와서 교육에 있어서 무엇을 해야할까하는 고민이 들었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학교에서 가르쳐준 기억이 없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는데 교육은 무엇을 할까??
이 맥락에서 KAOSPILOTS라는 것을 만들었고, 거기서 교장이 되었다. 시스템 밖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한 일들이다. 시스템 안에서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시의원으로 시작해서 녹생당을 만들기까지로 이어졌다. 시스템 밖에서 배운 것을 시스템 안에 적용하기도 했다. FRONT RUNNER으로 통해 문화에 대해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교육은 어떠해야 할까? 교육은 얼마나 흥미롭고 즐거운 것인가? 정치적 관점, 교육적 관점, 문화적 관점을 모두 보아야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소질을 펼쳐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소질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내가 늘 생각하는 고민이다. 내 소질을 그리고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는 교육은 정말 급진적이다. 머리, 심장, 손이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교육이다. 머리에서, 심장에서, 손에서 모두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데, 내면과 외면을 함께 생각해야한다. 그러면서도 직업적으로, 전문적으로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되, 자아성찰과 동시에 전문성을 가지는 것은 어떻게 할까? 사실 이것은 같이 가는 것이다. 각 직업은 각 직업 고유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전문적인 영역에서의 자격이다. 하지만 이로서는 부족하다. 1991년만 해도 이만 있어도 충분했다. 하지만 여기서 4가지가 이제는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신 삶 속도 되돌아보길 바란다. MEANING COMPETENCE, RELATIONAL COMPETENCE, CHANGE COMPETENCE, ACTION COMPETENCE다. 일단 의미가 중요하다.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관계적 역량이다. 우리가 남들과 함께 일하는데, 우리가 커뮤니케이션의 역량이 있는가? 또 동시에 지속가능하면서 정서적인 유대감을 가져갈 수 있는가이다. 또 변화에 대한 감각이다. 변화가 있을 때 어떻게 적응하는가? 예를 들어 새 정부가 등장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가? 마지막으로 행동 역량이 있는데, 아이디어가 있을 때 실현시키는 능력이 어떠한가에 관련된 것이다. 이것은 흑과 백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서로 작용하며 당신이 전문성을 성장시킬 수 있다. 그러면서 취업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이 정책적으로도 전개되어야 한다.
우리는 또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 차원과 팀적 차원을 보두 봐야 한다. 팀 내의 케미스트리와 역동성은 어떤가? 그것을 컨텐츠와 형식의 조화다. 교육에 있어서 강의식이어야 하는가? 카페나 이런 곳에서 편안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지난 40년간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는 노력하고 있다. 사실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1년 후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빠른 변화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좋은 변화도 있고 나쁜 변화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에 있어서 행복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가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유를 정말 사양한다. 또 자유를 통해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를 사랑하는 것, 사랑할 자유. 이 두가지를 되돌아보길 바란다. 이제 Q&A를 하자!
Q. 어떻게 기업가가 만족하는 교육을 만들어냈고, 국가가 교육에 대한 통제력을 어떻게 국민에게 되돌려주었는가
사실 덴마크에서 역설적인 일이 일어나는게, 피사 시험점수가 낮게나와서 획일적인 교육에 대한 고민거리가 시작되고 있다. 그래서 정말 재밌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게, 덴마크에서 한국정책을 배우려하고, 한국에서 덴마크정책을 공부하려고 한다. 아무튼 근데 덴마크 교육에 있어서 의미가 있는 것이 있다면 덴마크 사람들은 사회적 역량이 강하다. 그래서 CEO들이 만족하고 있다. 앞으로 특히 함꼐 일하고 비판적으로 일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한국은 성과를 너무 중요시한다. 말씀하신 것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까?
성공과 실패를 중요시하는 것은 사실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한것 같다. 매우 개인적이고 경쟁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기에 부모들은 학생들을 계속 닥달한다. 그렇게 하면 학위를 얻을 수는 있을지라도, 인생을 배우지는 못한다. 나는 점수는 정말 아무상관이 없다. 나는 호기심과 정직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학습이라는 것은 재밌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기업가들도 똑같이 생각한다. 지금 교육시스템이 망가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근데 망상이 있다. 점수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내려가기 전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꺠어있는 교육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