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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상호 깨달음 4 ㅣ 배움과 깨달음

*본 기사는 "교육의 재정의" 시리즈의 17번째 컨텐츠입니다. <클릭>해서 처음부터 보시는 것을 강력히 권장합니다.

*어려운 단어가 있나요? 용어사전을 활용해보세요.

지금까지 배움의 시작과 전개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배움을 통해 차상품을 획득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의 특징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차등에 대한 판단

상구활동이 지향하는 방향은 소재계의 품위차이에서 오는 차등, 변이, 차감에 의존하여 이루어집니다. 이는 동일한 사물을 두 가지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차별과 대비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는 스스로 자신의 변신을 꾀하는 가운데, 다시 말하면 자신이 차별적인 상태가 되어 보는 가운데 찾아집니다.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온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바람직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렇게도 되어보고 저렇게도 되어 보는 가운데 진실로 바람직한 것이 자신에게 나타납니다. 이 과제는 어느 면에서 진리의 추구가 불확실한 시행착오를 내포하고 있음을 함축합니다. 품위의 선택은 최소한 비교할만한 두 개 이상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확보했을 때 가능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한편에서 다른 편으로의 바람직한 변화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상구의 출발에는 현품이 있고 그 대안적인 것은 상구의 초기에서 발단하여 마지막에 확정됩니다. 상구의 앞부분에서 문제와 해결에 대한 예견을 통해 현품과 미래를 대비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상구활동이 거의 종료될 무렵에 더 나은 인식체계를 성취하고 그것에 비추어 과거의 것을 돌아봅니다. 믿었던 것이 허구로 드러나는 과정입니다. 차상품이 실현된 현재의 위치에서 과거의 품위를 회상하고 후자의 부실함과 전자의 충실함을 대비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이고 지녀야 할 것이 무엇인지가 스스로 분명해집니다.

이것은 단지 관망과 말만이 아닌 스스로 변화하는 실천을 통해서 비교의 근거를 확보함으로써 얻어진 성취입니다. 우리에게 발전이 가능할까 하는 의혹이 생기는 것은 결국 자신을 의혹하는 것입니다. 그 의혹을 해소하는 길은 스스로 발전함으로써 확인됩니다. 이 두 가지 대비를 합하여 우리는 편의상 ‘이중대비’라는 말을 쓰기로 합시다. 이 이중대비는 마치 나침반의 방향침의 양 날개처럼 일직선상에서 진리탐구가 지향해야 할 곳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하는 단서가 됩니다. 우리는 결국 더 나은 품위를 경험해 보고 이전의 상태보다 더 나아졌다는 판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이중대비에 의한 발전의 판단은 어떤 논리적인 구성물이 아니라 그것을 체험함으로써만 증거할 수 있는 어떤 것입니다. 학문 세계의 발전방향을 감별할 수 있는 식별력은 어떤 형식적 절차에 의해서 선험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시킨 활동에 의해서 확실한 근거를 갖습니다. 이런 이중대비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진리의 최종적인 판단은 인식대상에 대한 체험의 향상이 수반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환경과의 새로운 관계정립

어떤 품위든 간에 그 속에는 오류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류는 역사적 과정에서 그것이 정정된 후에만 오류로 나타납니다. 이제 상구의 첫 단계에서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가 생겼던 것은 그 단계의 품위가 가진 한계에서 비롯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품위를 얻음으로써 해소되었습니다. 이는 바로 후자가 전자보다 더 많은 경험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이때 그 선택은 거의 저항할 여지가 없이 후자로 전환됩니다. 이제까지 진리로 여겨왔던 지식이 일순에 권위를 잃게 됩니다. 더 바람직한 품위로 변화함으로써 더 바람직한 것을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상구자는 좀 더 높은 경지로 진입한 느낌을 갖습니다.

품위의 변화는 결국 상구자인 우리와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양상에 있어서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발전은 결국 환경에 대한 새로운 규정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상구자의 세계에 대한 지각이나 인식이 바뀜으로써 그의 환경이 또한 바뀝니다.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며, 생각되지 않던 것이 생각되고,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알려지게 됩니다. 어렵던 것이 쉬워지고 문제시되었던 것이 문제가 아닌 것으로 전환됩니다. 옛 것이 새롭습니다. 이상하고 신비롭게 보이던 것이 당연하게 보이고, 당연해 보였던 것이 이상하고 신비롭습니다. 의문이 답이 되고, 진리였던 것이 허위로 됩니다. 익숙했던 것이 소원하게 느껴지고 소원했던 것이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스승의 품위가 가깝게 다가옵니다. 이런 판단의 근거는 결국 상구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품위와 새로운 품위의 대비에 있습니다. 이만큼 새로운 품위는 적어도 이전의 것보다 우월적 실권을 확보하게 됩니다.

새로운 평가기준의 확보

높은 품위에 대한 평가는 인식주체가 그 높은 수준의 품위를 스스로 확보함으로써만 가능한 사건입니다. 상구에 의한 새로운 품위의 확보는 바람직함에 대한 기준 자체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상구를 시작할 무렵에는 이제까지 인식주체가 가지고 있었던 지식이 진리를 대표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구가 끝난 지점에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은 최근에 얻은 품위입니다. 이 두 가지 기준은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그 모두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평가기준의 선택과 더불어 과거의 평가기준이 부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진리체험입니다. “알고 보니 그게 아니다. 아,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이 순간 인식주체는 무엇이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특별한 감정을 느낍니다. 참됨, 아름다움, 그리고 착함이 나의 편이며, 그들이 나를 통해서 실현되고 있다는 성숙한 느낌을 갖습니다. 이것은 상구라는 실천적 역사의 배경이 있는 것으로서 단순한 감정과는 구분되는 승화된 감정과 환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험으로써 우리는 더 이상 과거로 향할 수 없는 불귀의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이제 새로운 품위가 이전의 문제를 해결한 이상 이전의 품위로 되돌아 갈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후퇴이며 수치입니다. 이 때문에 진정한 상구자는 자기의 현품을 버릴 뿐만 아니라 그것에 따라왔던 세속적인 명성과 명예에 대한 권리마저도 미련 없이 포기합니다.

학문계에서의 발전은 바로 지식에 대한 선택기준의 발전으로 보아야 합니다. 위의 논의를 특별히 인식론적으로 말한다면, 우리의 인식에 대한 판단의 근거는 최종적으로 우리 내부에서 확인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대상세계에 대한 상구 이전의 인지적 경험과 상구 이후의 인지적 경험의 대비가 바로 진리에 대한 경험을 보장합니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인식대상에 대한 서로 다른 구조의 지식 T1과 T2를 가지고 어느 편의 변화방향이 그 대상에 대한 인지적 접근에 있어서 상향적 체험을 보장하는가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상구활동은 그 상향적 체험을 하나의 요소로 포함하고 있거나 혹은 그것을 전제해야만 진행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T1이 상구 이전의 것이고 T2가 상구의 결과라면, 그리고 상구 자체의 구조에 의한 내재적 가치를 우리가 유지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T2가 T1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식체계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선택기준의 발전으로 해석될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의 것도 이전의 상태에서는 최선의 선택기준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 상황은 이전의 선택기준을 버리고 새로운 선택기준을 내면화한 것입니다.

상구의 반복에 의한 선진의 이해

상구의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과 다르게 나선형적으로 진행됩니다. 각 단계에는 그 나름의 품위가 탄생하고, 성장하고, 쇠퇴의 길을 밟습니다. 올바른 상구는 반드시 그 단계에 상응하는 진리체험을 보장합니다. 그러나 한 단계의 진전으로 진리를 획득한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상구는 한 단계에서 끝날 수 없습니다. 상구는 완벽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차선을 향합니다. 그것은 현품에서 시작해서 차상품의 실현에서 종료됩니다. 그러나 그 종료는 잠시의 쉼터에 불과합니다. 새롭게 획득한 차상품도 현품의 지위를 획득하자마자 그 시효가 제한됩니다. 이제 현품은 그 나름의 구속과 정체의 특징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상구 이전의 최초의 상태에 다시 되돌아 온 느낌을 갖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 단계의 상구는 그것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그것의 시작을 예고합니다.

우리는 흔히 교육을 수단의 관점에서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편협하고 위험한 생각입니다. 상구는 다른 것을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그 자체를 하는 것만으로도 보람과 가치를 가질 수 있는 활동입니다. 이 때문에 상구는 그에 참여하여 한 단계의 성취를 이루고 난 후에 그에 대한 욕구가 감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의 달성은 오히려 다음의 목표를 강화하고 한 차례의 상구가 다음의 상구를 요청합니다. 말하자면 상구에 만족하면 할수록 더 많은 상구를 하고 싶어집니다. 이 때문에 건강한 사람에게는 상규의 휴면상태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한 단계에서의 자증의 결과는 동시에 이별을 가져오는 결과가 됩니다. 상구의 목적은 떠남에 있습니다. 상구의 주체는 수도계의 특정 품위에 정지해 있을 때 조만간 지루함을 느끼며 생활의 공백을 메울 또 하나의 차상품과 접합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선진이 지나간 발자취를 확인하고 그때마다 만나게 되는 선진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습니다. 상구를 통해 진전을 계속하면 점차 선진적 품위 혹은 스승이 가진 품위의 이해에 도달합니다. 말하자면 매 단계에서 만나는 선진의 권위가 자신의 직관과 판단의 책임사항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승의 품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우리는 스승의 권위를 자신의 책임 하에 자신의 역량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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