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상호 깨달음 3 ㅣ 배움의 전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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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우리는 배움의 과정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이제는 새로 배우는 내용 그 자체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해 공부해봅시다.
언어적 모방의 경계
우리 주변에는 선진이 거쳐 간 흔적이 있습니다. 그 전형적인 것이 언어입니다. 그것은 쉽게 외우고 재생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외면적 결과는 내면적인 깨달음보다 더 쉽고 현저하기 때문에 남에게 인정받는 결과만을 생각하면 매우 효율적인 방법처럼 보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글과 말을 남에게 보이고 자랑하고 높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의 맹점은 비창조적이고 정태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창조적인 생각은 여러 가지 언어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방은 특정한 형태에 국한됩니다. 책을 읽되 자기 마음속으로 돌이켜 봄이 없다면 비록 백과사전을 보고 외웠다고 하더라도 아무 뜻도 없는 것입니다. 많은 정보가 쌓여질지는 모르지만 이들 간의 내적 일관성이 있는 지식은 얻어지기가 어렵습니다.
선진의 글을 읽고 말을 들을 때 그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의 체험이 무엇인지를 추리하고 자신이 그 체험의 세계에 진입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말로 배운다고 하더라도 배움이 끝난 곳에서는 말을 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곧 그들이 상구한 것을 내가 상구하는 과정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입으로 외우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이것이 곧 상구하는 독법입니다. 그러나 입으로는 외워도 실행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그 글과 말에 읽히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외우고 모방할 수 있지만 그것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능력과 체험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그 생각은 아직도 남의 것이고 자신이 소화할 수 없는 이물질인 것입니다.
해체와 구성의 병행
현재의 문제의식과 아직 달성되지 않은 미래의 해결에 대한 예상과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체는 자신의 현재적 조건에서 가시표적을 달성하기에 유용한 수단들을 확인하고 대안적인 요소나 활동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상구에서 해체와 건설은 병행되어야 합니다. 한편에서의 구성이나 건설이 없이 무조건 이루어지는 해체는 위험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건설하고 구성하여야 할 것인지는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아직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 곳은 현재의 판단을 새로운 것으로 대치해 나가야 할 징검다리입니다. 이 때문에 상구자는 외부와의 접촉을 통해서 여러 가지 새로운 생각을 갖고 시도해 보는 가운데 그 중 좋은 것을 발견하고 선택해 나아가야 합니다.
상구자가 아직 판단할 자격이 없는 사항에 대해서는 스승의 조언이나 판단에 의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 결론을 맹신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스승의 답이 곧바로 우리의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활동을 재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스승은 그런 품위를 획득할 수 있었는가요? 그 과정을 우리는 어떻게 다시 반복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던져놓고 상구자가 스승에 대해서 취해야 할 중요한 자세는 그의 지시에 따르고 스승의 시범을 유도해 내고 그가 부여하는 과제를 성실하게 수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상구자는 하화자의 시범에 담긴 핵심적인 의미를 찾기 위해서 능동적으로 탐색하고, 하화자의 시범과 자신의 행위를 번갈아 가면서 성찰하며 하화자가 보인 행위를 결국 자신의 것으로 동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회득
새로운 품위는 이전에 상구자가 가지고 있었던 사고체계와 동일한 논리 속에 모순 없이 포섭할 수 있는 사고체계가 아닙니다. 기존의 품위의 요소가 분화 혹은 수정되고 새로운 품위의 요소들이 추가되고 보충하면서 갈등과 모순이 일어납니다. 품위의 요소들간의 적당한 균열은 결국 현품의 한계점을 약화시키는 방법 그것의 강점을 주축으로 서로를 동조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품위가 총체적인 것인 이상 개선 역시 총체적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불안정과 안정의 교체가 있습니다. 품위로서의 지식은 그것을 소지한 사람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전자가 불안정할 때 후자도 동요하기 마련입니다. 어떤 일반적인 관념이 변화된 조건 아래 어떤 특수한 경험과 모순될 때, 그 결과는 모호해지고, 반응은 부조화하고, 개인적인 정체성은 덜 확실해집니다. 상구의 단계에서 이런 혼돈과 얼마만큼의 좌절은 오히려 정상적입니다.
한동안 충돌하던 품위의 요소들은 개별적인 특성을 고집하지 않고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 그리고 전체의 맥락 속에서 전반적으로 최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중용과 균형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체험구조가 하나의 구성체로 형성됨으로써 이제까지 추구했던 차상품이 현품의 위치를 차지하고 현품이 과품으로 전환됩니다. 이전의 품위의 요소는 해소되거나 폐기되거나 전도되거나 보다 높은 맥락에서 다른 의미와 기능을 갖습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인식의 총체적인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를 회득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혼재되었던 이질적이고 단편적인 품위의 요소가 새로운 구조에서 최적의 역량을 갖도록 중화되었을 때 우리는 제 역량과 조화에 따른 상승의 충족감을 일시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가치판단의 내재적 독립성
상구활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는 상구자가 스스로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주시하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발전의 최종적인 검증과 판단은 상구자 스스로의 경험 속에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자신의 변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면서 자신이 바람직하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내면적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 그 방향으로 유도해 나가야 합니다. 각종의 사회적인 압력, 선전문구, 주위사람들의 칭찬과 비난이 우리의 주체적인 선택과 판단을 현혹하고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정상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책임은 결국 상구자 자신에게 있습니다.
품위는 그 자체를 몸에 지니는 것만으로 보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학문계가 추구하는 진리가 내재적 가치를 갖는 하나의 조건이 됩니다. 우리가 남이 음식을 먹는 것을 단순히 관망하면서 배부르거나 그것의 맛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우리는 지식을 우리의 내부에서 재생산함으로써만 그것의 내재적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가치 있는 지식을 몸에서 생산하고 지니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선 우리가 진정으로 진리의 추구에 참여하는 것은 누구에게 무엇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리추구와 관련하여 누릴 수 있는 은총을 실현하고 증명하는 데 있습니다.
설사 스승의 지도를 받는 경우일지라도 상구자는 결국 스승과 타인에 대한 의존을 차차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그로부터 오도되고 있는지 여부도 자신이 확인해 나가야 합니다. 그가 강요하는 것을 수락한다거나 혹은 어떤 외재적인 보상에 의해서 그것을 모방한다면 일시적으로 결과상의 효과는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 임의적이고 강력한 자장으로 인해서 우리 자신의 주체적인 진리의 나침반이 교란 당합니다. 모든 것은 권위, 권력,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편에서의 자증에 근거하여 선별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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