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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적 세계와 교육 2 ㅣ 세속계와 수도계

*본 기사는 "교육의 재정의" 시리즈의 6번째 컨텐츠입니다. <클릭>해서 처음부터 보시는 것을 강력히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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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소재가 되는 세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합니다. 세상에는 외부에서 인정해줌으로써 가치를 가지는 것도 있고 스스로 의미부여를 함으로써 꽃이되는 것도 있습니다. 장상호는 전자를 세속계라고 칭하고, 후자를 수도계라고 칭합니다.

세속계는 인간이 지상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기능적인 체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치적 체제, 경제체제, 사회체제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물론 이러한 하위체제는 그 나름의 자율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환원될 수 없는 세계들입니다. 정치계에서는 세력이 획득되고 배분되고 유지됩니다. 강자에 의한 약자의 지배가 현저하며, 이를 견제하거나 균형지우기 위해 결탁, 연합, 복종 등의 방식등이 통용됩니다. 경제계에서는 물질과 재화가 생산되고, 교환되고, 분배됩니다.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의식주는 거의 화폐의 과다에 의해서 서열이 맺어집니다. 이를 위해 고용과 피고용이라는 경제적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여기에는 특별히 이해관계의 갈등과 조화가 문제시됩니다. 사회계는 상호주관적인 약속체제와 상황에 따른 역할과 위치의 높낮이를 규정한 예정된 대본이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관습과 표준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로부터 이탈하면 비정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합니다.

세속계를 이루는 이런 제반 하위체계는 다음의 몇가지 점에서 서로 공통성을 갖습니다. 첫째, 이것은 개인이 탄생하기 이전에 존속하는 것으로서, 모종의 관습, 규칙, 제도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애초부터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세속계는 이미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인간에 의해 형성되어 이제는 그 나름의 자율적인 존재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개인은 많은 경우에 이런 역사적인 실재를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이방적인 사실로 경험합니다. 둘째, 개인은 그가 소속한 특정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 공공의 유형화된 상황과 상호교섭의 형태,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관례화된 기준에 적응해야만 그 안에서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 적응능력은 "사회화"라는 과정을 통해서 습득되며, 그 기준은 반드시 인간성의 고양과 결부된 것은 아닙니다. 셋째, 그 적응의 정도는 대개 공공의 책임을 수행하는 기능적 효과에 의해서 평가됩니다. 평가는 자신보다는 타인의 인정이나 배척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세속계에서는 부단하게 남의 눈을 의식해야만 합니다. 내면적인 것과 외양의 구분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다수의 동의가 중요합니다. 그들의 평가를 받기 위해서 개인은 끊임없는 구설수와 침임의 소음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여기에서 모방, 표절, 인상관리, 은폐, 위장, 기만, 연극 등의 표면적 처세술이 유리하게 이용됩니다. 넷째, 세속계의 권력, 물질, 지위와 명예라는 자원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치열한 경쟁에 의해서 배분됩니다. 여기서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 높은 자와 낮은 자의 구분이 이루어집니다. 역사를 통해서 어느 때 어느 곳에ㅔ서나 전자가 후자보다는 적어도 세속계의 입장에서는 윤택한 삶을 향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서 수도계는 인간의 내면적인 요청에 따라 잠재적인 가능성을 주체적으로 실현시켜 나가는 세계입니다. 인간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간을 두드러지게 특징지우는 속성의 하나가 자기초월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내부에 잠재된 재능이나 재질을 발견하고 개발함으로써 좀더 나은 세계를 실재와 접촉하려는 강한 충동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성은 우리들 자신에 의해서 부단히 실험되고 있고 선택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생존하기 위한 기술을 습득하는 것과 구분됩니다. 기술은 그것의 용도에 의해서 평가됩니다. 그러나 우링게는 내면의 가능성을 개발하여 실현시켜 나가는 것 자체가 충분한 보상이 되는 그런 유형의 보람있는 생활의 면모가 있습니다. 진선미라는 수도계적 가치는 어떤 세속적 혹은 공리적인 목적과 무관하게 추구됩니다. 우리가 수도계를 추구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인간이 그 자체의 기능성 가운데 가치있는 것을 실현하는 것 자체가 소중하기 때문에 추구합니다. 즉 수도계는 인간이 그 자체로서 가치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출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도입하려는 수도계란 이런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속성에 의해서 구상되는 다양한 세계들을 총칭하는 개념입니다.

수도계는 다음의 몇가지 특성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그것은 내적인 성장에 의해서 접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물론 이는 지적했듯이 기존의 알려진 수도계가 있으나 그 실재성은 오로지 그것을 내재화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적절한 변화에 의해서한 체험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내적인 성숙이 없이 그 세계를 접한다면 그것은 단지 객관적인 물리의 세계 이상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 세계에서는 개개인의 탐구와 행동과 의지의 일치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둘째, 그것이 지향하는 가치는 내재적입니다. 그것의 발전은 우리의 내면의 요청에 응함으로써 확인됩니다. 따라서 강요된 가치는 이 세계에서 성립될 수 없습니다. 셋째, 그 전통은 날로 쇄신되고 있습니다. 이전의 발전단계가 이후의 단계에 의해서 부정됩니다. 따라서 그들간에는 논리적인 자극이 있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이전의 것으로 이후의 것을 설명하거나 예측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는 것도 큰 특징의 하나다. 넷째, 그 수준의 선후는 세속계적인 지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수도계에서는 정상의 수준만이 유효하고 그것이 그 공동체를 대표하기 때문에 참여자는 그 공동체에서 최고의 수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이전의 단계는 이후의 단계에 도양하기 위한 토대로서의 의미를 가질 뿐입니다.

가능성으로서 인간의 본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약 그 특성을 굳히 말하라고 한다면 "형성과정 속에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변화가정을 거치며, 따라서 미래지향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성은 수도계에서 그 종류와 수준이라는 두가지 방향에서 개방되어 있습니다. 그 종류에 있어서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수준에 있어서 비결정적이고 불확정적입니다. 이 때문에 인간과 관련된 모든 현상은 결코 어느 한가지 관점에서 확고하게 정의되거나 결정될 수 없습니다.

수도계에는 우선 상이한 종류가 있습니다. 인간의 가능성은 다양합니다. 역사란 인간의 자기발현이며, 역사가 오래 지속될수록 인간은 더욱 더 자기본질을 다면적으로 실현하게 됩니다. 인간은 그 육체만큼이나 열렬하게 만족을 추구하는 정신을 지니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만큼 수도계의 세계는 다양합니다. 학문, 예술, 도덕 등은 종류가 다른 수도계로서 각각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하기 때문에 서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각종의 수도계는 각각 그 고유의 내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그 탁월성을 평가함에 있어서 그 중 하나의 것을 다른 것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범주착오를 범하는 것입니다.

또한 각 수도계는 또한 서로 다른 발전수준을 갖습니다. 그것은 마치 나선형의 모양을 닮아 끊임없이 단계별로 위를 향해 심화, 확장, 발전합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에 그 높이의 한단계에 올라 서지만 금방 자신의 수준에서 한계를 느낍니다. 이때 기존의 단계를 문제시하고 더 높은 단계에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실재를 체험하기 위해 스스로의 혁명을 모색합니다. 이처럼 이들 각각은 끊임없이 자기 부정과 자아창조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꾀해 나가기 때문에 상이한 수준을 갖습니다. 이 수준은 그 각각의 세계 내에서 그 세계를 규정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선택지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 세계 내의 고유한 가치기준에 의해서 하나의 수준이 다른 수준으로 대치될 수 있습니다. 수도계 내부에서는 수많은 모순된 ㅂ말전단계가 있고 그 속에서 우리는 끝없는 내면적인 혁명을 꾀면서 미지의 새롭고 위대한 자신을 만납니다.

역사를 통해서 수도계는 여러 종류로 분화되거나 확장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 단계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급진적으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도계를 망라하여 오늘 총체적으로 열거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그들은 많은 경우에 언술의 경계를 벗어나 있습니다. 수도계의 종류가 몇가지이며 각각은 몇 단계의 발전 수준이 있는지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누군가 이에 대한 해답을 시도한다면 이는 마치 한없이 팽창하는 우주의 일면을 포착하고 그것이 항존하는 우주의 양태로 착각하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할 것입니다. 수도계의 총체를 망라하려는 시도 자체가 수도계의 속성을 모르는 무모한 태도를 반영합니다. 수도계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질무이 제기되는 경우 그 어떤 완결된 해답도 주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단히 발전해 왔고 또한 아직도 발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각각의 단계에서 그 단계를 반영하는 다양한 정의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각자 수도계의 어떤 중간적인 단계에 있는 재한된 존재로서 떄와 장소에 따라 그 제한된 역량을 범위 내에서 그 수도계의 일부를 체험하고 있을 뿐입니다.

흔히 서양에서는 그런 부류의 수도계를 진, 선, 미 등의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세계로 묘사해 왔습니다.이와는 달리 동양에서는 인, 해탈, 선, 요가 등등의 이질적인 수도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미 지적했듯이 이 수도계들의 한가지 공통점은 그 자체의 추구에서 생활의 보람을 찾는 것입니다.이 세계의 대가들은 어느 경우나 "기술 따위에 신경을 써서는 안된다. 심기를 단련하는 일에만 몰두하라"고 충고합니다. 이런 충고는 태권도, 유도, 검도, 각종의 스포츠, 그리고 기도와 같은 취미의 영역에서도 강조됩니다. 그 대가들의 말에서 우리는 수도계는 그 자체로서 내재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세계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대가들의 충고를 따라 우리는 열심히 수련을 쌓아야 하며 그런 자기변신의 노력을 통해서만 그 대가들이 말하는 수도계의 종류와 수준을 다소나마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말하자면 수도계는 미리 규정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 추구하면서 자츰 확인할 수 밖에 없는 미궁의 세계입니다.

세속계와 수도계는 서로 이질적인 구조와 목표를 가지고 병존하거나 갈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한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치적인 자유주의나 사회주의는 사람과 사람간의 수평화를 목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숫자와 평균적인 인간이 의사결정에 있어서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놓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단독으로는 아무 것도 성취 할수 없습니다. 동일한 혹은 유사한 삶의 틀에 개개인인 우리로서 적응해야 합니다. 개인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하며, 모든 사람은 사슬의 한 고리로서 이 세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유기적인 구체성이 와해됩니다. 세속계는 공동체의 질서와 이익을 위해서 일련의 사회적 기제를 발전시킵니다. 여기에는 한 개인이 자기 자신과 주체적 관계를 맺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세속적인 공동목표를 위해서는 강요와 일치도 불가피합니다. 이런 속성은 경우에 따라서 자기실현이라는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와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 수도계는 다수결에 의해서 모든 것을 결정해 나가는 민주주의 같은 것은 믿지 않습니다. 일치와 대중적인 것이 위주가 되는 세속계적인 생활가는 대조적으로 수도계는 초월과 엘리트적인 것이 위주가 되는 생활을 합니다.수도계에서는 민중과 대중을 집단의 힘으로 결집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 개별자에게 최종적인 책임이 주어지며,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전혀 새로운 의미의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이 곳에서는 세속계적인 유대를 해체시키고 철저하기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도계에서는 세속계의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공동체적인 책임이 서로간에 주어집니다.

수도계에서 사람들은 남의 일에 호기심을 갖느니 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의 일에 더 마음을 씁니다. 이 점에서 수도계는 이른바 위기지학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각 개인의 내부에는 극복되어야 할 결점에 대한 인식과 아울러 그것을 떨쳐버리고 위로 지향하려는 소망이 동시에 있습니다. 개인은 이 곳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성과 계발과 그 수련에 의해서 단계의 비약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 정도에 따라서 세속계에서와는 다른 인간적 가치의 위계가 결정됩니다. 이를 태면, 수도계가 지향하는 가치는 개별자가 그가 위치한 위계의 수준에서 열등하게 혹은 우월하게 체험합니다. 이 왕국에서는 한 수준의 선진이 그 이하의 후진의 모든 것보다 우월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 곳의 인구는 삼각형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소수의 우월하고 권위를 가진 뛰어난 자들에게 존경과 두려움과 찬미가 주어집니다.

그 이외에도 세속계와 수도계간의 대비는 얼마든지 더 열거될 수 있습니다. 인간생활 속의 세계는 주관적인 측면과 객관적인 측면의 양면이 있습니다. 그 중 세속계는 객관적인 조건에 대한 적응이 불가피하고 또한 생존을 위해서 중요합니다. 세속계의 개선이란 바로 그런 외적 조건의 개선을 의미합니다. 이에 비해서 수도계는 자신의 자발적인 변용만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주관이 객관보다 중요한 위치를 점합니다. 수도계에서 사람들은 외적조건, 제도, 질서보다는 오직 내면적인 정신과 질서의 혁신에 의해서만 발전합니다. 즉 인간내면의 변혁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그 이외의 것은 대수롭지 않은 것입니다. 권력, 재산, 지위는 외적인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박탈될 수 있으나 내면에 쌓아진 덕성은 빼았기지 않습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인간은 이 수도계를 만들고 그 안에 삶으로써 세속계의 상황적인 제약으로부터 벗어사 인간된 내면의 자유를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세속계는 우리의 인간적인 성숙을 조장하거나 억압시키는 조건은 될 수 있을지언정 수도계 자체는 아닙니다. 수도계는 가끔 세속계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서 세워놓은 질서를 파괴하는 인간적인 자각을 주기도 합니다. 세속계는 그 자체의 특성으로 이런 세속계에 억압적이거나 촉진적인 환경으로 작용하고 영향을 줍니다. 그들간의 원만한 관계만을 고려한다면 세속계는 수도계에서 그 자율성을 보장하는 정치적인 조건, 그것의 물질적인 유지를 보장하는 경제적인 조건, 그리고 그 활동을 능률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구와 제도를 제공하고, 수도계는 탐색된 인간의 위대성을 토대로 세속계의 삶에 새로운 활기와 힘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의 가치와 목적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것을 자체의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서만 가치를 부여한다면 그러한 상호보완적인 기능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세속계가 역사적으로 그런 충돌을 완충하는 방식으로 발전을 하여 왔지만 인간과 사회와의 이질적인 특성과 그에 따른 충돌가능성 자체를 최종적으로 해소하거나 화해시키는 비결은 그동안 끊임없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종식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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