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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의 다양성 정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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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의 다양성 - ‘수능의 아버지’ 박도순 초대 평가위원장

위 기사는 ‘프로젝트 위기’에서 있었던 ‘컨퍼런스 위기 2016 WINTER’에서의 강의 중 ‘박도순’ 초대 평가위원장의 강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음을 알립니다. 강의를 바탕으로 재구성 된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수능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박도순 초대 평가위원장. 그는 자신이 처음에 생각했던 수능은 최소한의 자격조건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공정성, 객관성에 대한 요구와 점점 더 경쟁을 추구하는 사회분위기로 인해서 지금 형태의 수능이 되었다고 말한다. 수능을 만든 사람조차 지금의 수능은 없어져야 한다고 하는 현 상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교육과 평가, 평가 결과. 이 세 개를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다르게 시작할 경우 그 끝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질 것이다.

교육에 대한 시각

교육에 대해서 사람들은 흔히 두가지의 반응을 보인다. 먼저 교육을 하나의 ‘기능’으로 보는 것이다. 국가발전을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효율성의 잣대로 교육을 바라본다. 하나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시각은 ‘교육 자체의 의미’를 바라보는 것이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즐거움과 행복이다. 학생들이 집을 제외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인 학교는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계속 있고 싶어하는 곳이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게 해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효율적인 도구’로 학교를, 교육을 바라보게 된다면 학교에서 ‘즐거움’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교육을 단순히 하나의 도구로 바라보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을 정리해보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평가에 대해 알아보자.

평가의 문제

평가는 학교생활동안 우리의 뒤를 항상 쫓아다닌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학교를 싫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평가에는 긍정적인 요인도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 학교를 바라보면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개인차’이다.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적성과 잠재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평가를 보면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시험을 예로 들어보겠다. 만약 시험에서 모든 사람이 만점을 맞았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보통 시험이 쉬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모두가 만점을 받을 수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전제에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열심히 했구나, 교사가 열심히 가르쳤구나 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잠재력의 차이, 사람의 차이라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교육과 평가와의 관계

교육평가란 교육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평가는 교육의 본질을 훼손시키고 있다. 현재 평가는 상대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상대평가라는 것은 개인의 능력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고 구분을 짓기 위한 평가이다. 모든 사람이 만점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결국 몇몇의 학생들은 ‘실패의 경험’을 겪게 된다. 성장에 있어서 일정수준의 실패는 자극을 주겠지만 이처럼 소수만 성공의 경험을 하게 되는 평가는 교육의 본질인 ‘자아실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평가를 통해서 교육에 도움이 되려면 학생에 대한 평가가 학생을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시험을 보고 나서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시험을 보고 나면 대부분 몇등했냐고 묻거나 몇점이냐고 묻는다. 평가를 ‘이해의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비교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경쟁상태가 비교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이다. 단순히 줄을 새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다면 조금 더 깊게 왜 평가의 다양성이 필요한지 알아보자.

평가의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

교육에서는 ‘자율화 과정’이 필요하다. 자율화되지 않으면 창의적인 것도, 독립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7차 교육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수준별교육과정을 생각해보자. 말은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교육의 내용을 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학생들은 수능을 보게 되는데, ‘수능은 한가지 기준’이기 때문이다. 학력고사를 전국단위로 보게 되면 안 가르친 곳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을 가르치게 되는 것이다. ‘일제’라는 말이 붙은 것은 교육의 다양성을 없애게 된다.

또한 교육의 전문적인 특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자율화가 필요하다. 전문적인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것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학생들은 진단평가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진단평가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다형시험이라고 할지라고 시험의 본질은 정답이 아니라 오답에 있다. 어떠한 문제를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틀렸는지를 알아야 그것에 맞게 처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그냥 두자리수 덧셈을 못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두자리수 덧셈을 100문제를 주고 풀라고 한다. 그러면 공부하기 싫어진다. 그때 제대로 진단을 하려고 하면 이 학생이 두자리수 덧셈에서 받아올리는 것을 못한다. 그런 것을 지도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평가의 본질을 찾는 것이다. 결국 실제로 우리가 평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은 경우에 교육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본질을 훼손시킨다면 평가를 없애야 하는 것이다. 사실 시험을 없애야 한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평가 결과

시험점수라는 것은 시험의 결과이다. 점수란 우리가 재려고 하는 것의 일부만을 잰다. 국어시험에서 100점 만점에 90점을 받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교육과정에서 90퍼센트를 달성했다는 것이 아니다. 시험이 교육과정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졌다고 생각할텐데 사실 그렇지 않다. 교육과정의 목표를 보면 굉장히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 작은 한부분만을 본 것이다. 교육목표에서는 지식, 이해, 적용, 분석, 종합, 평가 이렇게 단계가 있다. 그러나 평가에는 지식, 이해정도밖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 목표에는 지식만 있지 않다. 정의적 내용도 있고 운동기능적인 내용도 있다. 이것을 보면 큰 것중에 3분의 1이 해당되고 그 안에서 또 3분에 1만이 달성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평가에서 재려고 하는 것 자체가 불분명하다. 학력이 무엇인지 도서관에서 책을 찾으면 두꺼운 책들이 수십 권이 나온다. 그 말은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보통 정신적인 과정을 교육평가에서 재려고 하는 데 그 내용이 불분명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를 학교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험에서 점수를 재는 것이 직접적이지 못하다. 학생의 몸무게를 재려고 하면 저울에 앉아야 되는데 키를 보고 몸무게를 이야기하고 있는 겪이다. 초등학교 과학 교육과정을 보면 과학적 사고력을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과학적 지식을 측정하고 성적이 높으면 사고력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듯 단순히 암기만을 위한 시험이 아닌 것을 찾아보면 한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수행평가’이다.

수행평가란?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교육이라고 하면 꼭 책상에 앉아서 해결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수행평가이다. 방법이 변화한 것이 아니라 평가목표가 바뀐 것이다. 암기로 모든 것을 공부하는 것을 배제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자기주도적 학습을 높일 수 있고 창의력을 높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평가방식이 수행평가이다.

결국 우리는 획일화 된 시험이 아닌,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평가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평가에서 중요한 것

여러 가지 테크닉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떠한 입장에서 보아야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공정성’, ‘객관성’을 강조하면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점수라는 하나의 지표만 가지고 하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올 때 수능점수가 320점이면 대학을 붙고 319점이면 대학을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그러한 사고가 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320점과 319점은 단순히 숫자의 차이이지 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식으로 쓰인다면 없어져야 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창의력은 어떻게 재냐고 묻고 싶다. 인성 어떻게 재나? 사실 대부분 생활하면서 다 알게 된다. 그런데 못하는 이유가 머냐면 공정성, 객관성 때문이다. 30명을 다 줄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사람을 줄 세워야 하는 ‘경쟁’상태를 완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의 평가는 없어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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