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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망친 당신에게 하고 싶은 위로

중학교 2학년 였다. 영어 시험을 마친 그날, 나는 우리집 옥상에 올라갔다. 죽고 싶었다. 외고를 가야한다고 믿었던 나에게, 영어 시험은 너무 가혹했다. 한 문제를 틀리면 바로 2등급이 나오는 학교에서 나는 한 문제를 틀렸다. 사실 출제오류가 강하게 의심되었지만 선생님과 싸울 것을 생각하니 막막했다. 그래서 나는 옥상에 올라갔다. 외고를 가지 못할 나는 인생을 망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글은 그 당시 나에게 보내는 편지다. 그 때 옥상이 너무 높았던 것에,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던 것에 너무 감사하다.

 

진우에게

진우야, 세상은 너무 냉혹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야.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꿈 꾸고 있는 이상, 패배자는 존재할 수 밖에 없어. 그게 너라고 너무 힘들어하지 마. 너가 아니라면 누군가 그 고통을 대신 받고 있지 않을까? 그 고통을 누구에게 넘기지 말고 우리 스스로 잘 해결해보자.

미래의 너는 정말 괴상한 이름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을 거야. 그 제목은 “시험공부 안하기 프로젝트”. 심지어 그 다큐를 기반으로 시사회를 열어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기도 할거야. 누구보다도 시험점수에 신경을 쓰던 너, 목숨을 걸고서라도 시험을 잘 보고 싶었던 너가 왜 이러한 짓을 하고 있을까? 왜냐면 마음가짐만 조금 바꾸면 너가 지금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설렘으로, 억울함을 이타심으로, 분노를 고마움으로 바꿀 수 있거든. 그 마음가짐은 바로 너가 시험보다 소중하다는 깨달음으로 시작해. 현실과 단절되어 혼자서만 자기 만족하는 사람같이 들린다고? 그러게. 내가 보기에는 정작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시험만 잘 보면 행복해하는 사람이 더 그러한 사람 같아 보이는데? 날 믿어도 괜찮아. 나는 어느때보다 세상에 멋진 선물을 한 사람이고 싶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내일을 기대하는 욕심 많은 사람이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봐.

아까 내가 세상은 냉혹하다고 했을 때, 그 말은 정말 진심이야. 세상은 지극히 현실적이야. 맹수가 두려워 동굴 밖으로 나가지 않은 인간은 굶어 죽게 되어있어. 물론 예외가 있지. 주변에 용기 있는 친구나 가족들이 대신 밖에서 먹을 것을 가져다 준다면 말이야. 물론 그는 그 친구와 가족들에게 매우 많은 사랑을 받아야할 거야. 그러기 위해 그는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지. 어느 하루 그들이 그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그는 엄청난 두려움과 억울함, 어쩌면 분노를 느낄 수도 있을 거야.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겠지. 자기 옆에 있는 또 다른 용기 없는 친구에게는 먹을 것을 주면서 자신에게는 주지 않으니 말이야. 한 영화에서는 이렇게 말하더라고. “두려움을 느끼는가? 노예로 사는 것이란 그러한 거야”. 이번에는 그 용기가 있는 친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어느 하루는 밖에 나갔는데 정말 큰 매머드 한 마리가 보이는 거야. 그걸 잡아서 동굴로 가져가면 친구들과 가족들이 몇일은 풍족하게 먹을 수 있을거야. 그런데 문제는 혼자 그 매머드를 잡기에 역부족인데, 주변에 아무도 없는거야. 눈 앞에서 먹을 것을 놓쳐버린 것이지. 그는 어떤 기분이 들까? 아마 처음에는 좀 짜증나고 아쉬웠을 거야. 근데 그러한 감정은 곧 설렘과 이타심, 그리고 고마움으로 바뀔거야. 왜냐면 다음에 더 잘 하면 되거든. 다음에는 여러명이 함께 나와 매머드를 잡을 수 있을 것이고, 이 깨달음을 다른 친구들에게 알리면 그들도 더 많은 먹이를 가져올 거야. 그리고 이러한 것을 알게 해준 상황에 대해 고마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 사냥에 실패하고 돌아온 그는 비교적 건강해 보이는 사냥을 안하는 친구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다음에 둘이 같이 사냥을 나가면 서로 행복하지 않을까?

얼마전에 대기업의 인사팀장으로 10년간 일했던 한 분을 만나서 이야기 나눈 적이 있었는데,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어. 대기업에도 사람이 없어서 고민이라는 거야. 매번 수만개의 입사원서가 오지만, 정작 뽑아보면 시험만 잘 보는 사람일 뿐, 진짜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하기에는 처음부터 다시 교육을 해야한다는 거야. 제대로 된 직원이 별로 없으니, 그 기업은 유의미한 것을 잘 생산하지 못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직원들도 해고하기 시작해야할 것이야. 뭔가 이러한 이야기, 위의 이야기와 닮은 면이 많지 않니?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은 두려울 수 밖에 없어. 그러면 삶의 질은 의존하는 대상에게 달려있고, 그것에 대한 통제권이 없거든. 그냥 그 대상이 너를 좋아하기만 바랄 수 밖에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생활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퇴사를 결정하고 있어. 거대한 시스템의 한 부품으로 살아가는 삶은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재미도 없어.

진우야, 다시 너가 본 시험으로 되돌아가자. 다음에 시험 더 잘 보면 되라고 위로하고 싶지 않아. 너는 틀린 그 문제를 선생님께 문제오류가 있다고 의의제기를 할거야. 그리고 교과서 출판사, 스탠포드 언어학 교수, 동료 교사들이 너의 주장이 맞다고 동조해줄 것이지만 너의 선생님은 끝까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을거야. 오류를 인정하면 시말서를 써야 하거든. 그래서 너는 2등급이 나올거고, 너 때문에 성적표가 늦게 나왔기 때문에 전교적인 은따가 될거야.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중요하지가 않아. 너는 충분히 영어를 잘해. 그 영어실력 덕분에 너는 앞으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방대한 영어자료를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영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외국인과 소통하며 너의 안목을 넓혀 갈거야. 능력이 없을 때는 남의 이목이 신경이 쓰이겠지만 너가 스스로 능력이 있음을 알 때는 남들이 그것을 알아주고 함께하려고 하면 좋은 것이고, 아니라면 너가 그냥 하면 되는거야. 오히려 그 능력을 못 알아본 다른 사람들이 아쉬운 것이지.

진우야, 아무도 너에게 영원히 먹을 것을 가져다 줄 수 없음은 언젠가 깨닫게 될거야. 너가 의미를 찾지 못하는 행동은 그 누구도 대신 찾아주지 않아. 혹시 만약 누군가 대신 해준다고 해도, 그것은 남에게 너무 민폐인 삶인 것이지. 지금이라도 세상의 현실성을 깨닫고 너의 신념대로 살아가면 좋겠구나. 너는 시험보다 충분히 소중해. 시험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지만 너는 정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거든. 지금 창 밖을 보니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 이 멋진 세상은 너가 그 세상을 보고 있기에 아름다운 것을 잊지 말아줘.

2016.12.19 베이징에서 런던가는 하늘에서

 

* 해당 영어 시험문제 논쟁은 "I saw the window breaking"이 문법적으로 틀렸나 안틀렸나에 관한 것이었는데, 선생님의 주장은 그것이 틀렸다는 것이고, 나의 주장은 그것이 맞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어렵고 크게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를 가지고 몇달간 고생했던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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