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개최된 컨퍼런스 위기 2016 WINTER 관련 기사가 한겨레에 실렸습니다.
기사보기 :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733697.html
“모든 학교에서 평가를 없앤다면 어떻게 될까요?”
“평가가 없어지면 우리나라가 망할까요?”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내며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만든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시험 때문에 억지로 공부하다 보면 특정 과목이 좋아지고 공부에 재미를 붙일 수도 있죠. 시험이 ‘외적 자극’이 되는 거고 그로 인해 ‘내적 자극’이 일어나는 거죠. 하지만 학교에서는 실제 수능이라는 하나의 기준에 맞춰 똑같이 가르쳤습니다. 결국 일제고사는 교육의 자율화를 없애고, 획일화·서열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어요. 이런 평가라면 없애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10·20대 주도로 꾸린 비영리단체 ‘프로젝트 위기’ 주최 교육 행사 열려
평가제도와 학생자치 활동 등 주제로 각계각층 교육 관계자 강연 나서 수능체제 비판·다양한 평가방식 제안 참가자들 사례 공유하며 대안 찾아
지난달 26일 서울시청 지하 시민청에서 ‘학생자치와 평가제도’라는 주제로 ‘교육 콘퍼런스 위기’가 열렸다. 10~20대 청년들이 모여 꾸린 비영리단체 ‘프로젝트 위기’(projectwigi.wix.com/official)가 마련한 행사였다. 콘퍼런스 위기에서 ‘위기’란 공자가 말한 ‘위기지학’의 줄임말로 참된 나다움을 밝히기 위한 공부를 뜻한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은 물론 학부모, 현직 교사, 직장인 등 44명이 참가한 콘퍼런스에서는 ‘학생자치’와 ‘평가제도’라는 소주제로 각각 강연을 진행한 뒤 관련 주제에 대해 모둠별 활동 시간을 가졌다.
박 교수는 이날 ‘평가제도의 개선방향-평가의 다양성’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처음 수능을 만들면서 이를 절대적인 평가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실제 수능 점수 몇 점 차이는 순전히 우연의 오차다. 하지만 지금은 이걸 의미 있는 차이라고 생각하고 평가한다”며 “학력 위주로 다른 사람과 경쟁해 순위를 매기는 평가제도는 변해야 한다”고 했다.
“교육 본연의 목표는 각 개인의 잠재능력을 끄집어내서 높여주는 데 있다. 평가 자체가 교육의 본질에 일부 도움을 주긴 하지만 지금의 방식은 각 개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가 아닌 학력 서열화를 만들어 우열을 가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잘못됐다.”
박 교수는 평가의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를 “교육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선다형 시험의 핵심은 정답이 아니라 오답에 있다. 학생이 무엇 때문에 틀렸는지 알아야 알맞은 교육법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평가의 목적을 정답을 맞히는 것에 두고 틀린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연습을 시킨다.”
그러면서 그는 “아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알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다르다는 걸 전제로 맞춤형 교육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교육과 평가 두 측면 모두 다양성과 자율성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고3 담임 이승주, 교(육이)실(패한 공간)을 버리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웅상고(경남 양산 소재) 이승주 교사는 현재 교내 대안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수능 체제로 돌아가는 일반 학급과 달리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을 모아 다양한 진로활동을 한다.
“교사들은 학생을 상담할 때 적성이나 성적에 맞춰 대학과 학과를 알려주고 무조건 노력하라고 한다. 여기에는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직장을 구하게 되고, 그러면 훌륭한 배우자 만나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라는 교사 내면의 기본적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건 말이 안 된다.”
이 교사는 이원석 작가가 쓴 <공부란 무엇인가>에 나온 ‘한국 학생들의 진로’라는 제목의 표를 보여주며 “결국 현실은 전공이나 직장 상관없이 최종적으로 ‘치킨집’ 아니면 ‘아사’다. 이 상황에서도 학생들에게 오직 하나의 길만 제시한다”고 말했다.
이 교사가 보여준 수행평가 평가지는 발표지, 발표 점수, 동료 평가, 질문 점수 등 다양한 항목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는 “아이들마다 발표 자료를 잘 만드는 친구, 설명을 잘하는 친구 등 잘하는 게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평가도 다양해야 한다”며 “평가는 아이가 공부한 내용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입시체제에서 ‘왜’라고 묻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원웨이 트랙’에서는 ‘왜’라는 질문을 할 필요가 없다. 고민 없이 무조건 빨리 앞서서 뛰어야 한다. 트랙을 여러 개 만들어놔야 학생 스스로 가치 있게 생각하는 트랙을 찾을 수 있다.”
이후 팀별로 최고의 평가 제도를 만드는 미션 활동이 이어졌다. 고3 송민주양은 “진정한 배움이 뭔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하지만 학교에서 하는 모든 수업이 시험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교사나 학생 모두 ‘시험에 낼 것, 시험에 나올 것’에만 신경 쓴다”며 “학문의 즐거움을 느끼기는커녕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다 보니 평가가 끝나면 공부 자체를 내려놓게 된다”고 말했다. 협동조합가치공유연구소에서 일하는 김용진(29)씨는 “지금의 평가는 사람을 손쉽게 분류하기 위한 것이다. 대학에서 자기 구실을 안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각 팀은 열띤 토론 끝에 다양한 평가 제도를 내놨다. 그 내용을 보면 ‘공통 시험범위 외 각자 선택한 심화영역을 평가하면서 점수나 등수 대신 학생 개인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구체적인 피드백을 준다’, ‘다양한 대학이 세워져야 한다는 전제 아래 각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에 맞게 학생을 최대 3회까지 선발할 수 있게 한다’, ‘상시평가로 학습의욕을 높이고 문답형·구술형·서술형 평가를 비롯해 그림 그려보기 등 평가 수단을 다양화하되 공정성 확보를 위해 하나 이상의 공통 기준을 갖춰야 한다’ 등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구은정씨는 “평소 교육에 관심을 가져 왔는데 조별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의 새로운 생각을 접했다”며 “우리나라 평가제도가 불합리하다는 데 모두 공감했다. 이 문제에 직면해 가장 힘든 건 학생이다. 학생들이 권한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나서는 이런 행사를 와보니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홍찬 경기도 수원고 총학생회장과 중·고등 대안학교인 더불어가는배움터길 김석윤 교사는 학생자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백진우 대표는 “우리 단체를 통해 더 나은 교육을 꿈꾸는 누구나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다. 대표의 지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사람이 주도해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교육이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 각계각층 전문가와 교육을 위해 다양한 구실을 하는 사람이 모여 생각을 공유하고 해법을 찾는 자리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