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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위기 구성원, 생각이 궁금하다


전통적으로 유교에 대한 담론은 끊이질 않았다. 모든 철학들이 그러하듯이 유교 또한 시대의 흐름에 맞춰 재정립되도록 요구 받았으며, 그에 따라 담론의 새로운 구도가 제시되었다. 프로젝트 위기 역시 논어라는 ‘유교경전’에서 비롯된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장려를 목표로 함으로써, 급격하게 변하는 시대에 따라 이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 담론을 이어가고 있다. 성리학, 양명학, 실학 등의 새로운 철학이 ‘학문의 순수성이 우선인지, 실용성이 우선인지’ 그 갈림길을 거쳐왔듯이 프로젝트 위기 역시 담론 속에서 위기지학의 정체성을 새로이 찾아가고 있다. ‘위기지학’을 둘러싼 구성원들의 다른 생각들. 프로젝트 위기 구성원인 양동규 씨(이하 ‘양’), 백진우 씨(이하 ‘백’) 그리고 장준영(이하 ‘장’)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위기지학(爲己之學)’ 그리고 ‘위인지학(爲人之學)’은 무엇인가요?

양: 스스로가 삶의 주인공이 되어 사는 게 위기지학이며, 본인의 삶에서 주변인으로 밀려나는 게 위인지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백: 위기지학은 진리가 있음을 믿고 따르는 것이 즉 ‘자기 실현’임을 알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를 협력적으로 하는 것이 '교육'인데, 교육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가치는 드높아집니다. 반면 위인지학은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한 공부로, 사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자아를 상실하게 합니다.

장: 위기지학이란 자기 자신의 본질을 밝히기 위한 학문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즉, 위기지학을 꾀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본질과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따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위기지학을 따름이 세상을 협력적이고 이롭게 만들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위기지학을 알리고자 함이 아닐까요? 여기서 협력은 상생 -이로운 것은 나누고, 이롭지 아니 한 것은 함께 배척하는 것- 을 의미한다. 위인지학은 그 반대를 의미합니다.

위기지학을 학습해갈수록 행동과 생각에 있어 처음과 달라진 점이 있었나요?

양: 처음에는 학문으로만 생각했지만, 학문이 아닌 삶은 행동지침 및 세상을 보는 관점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백: 위기지학을 학습해나갈수록 일반적으로 교육혁신분야에서 무시되곤 하는 기존의 대학교육 및 고전작품들에 대해 재평가하게 됐습니다. 위기지학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부족함을 인지하고 자신보다 어떤 분야에 있어서 우월한 사람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는 최근 학습자를 고평가하는 교육혁신계의 움직임과 충돌합니다. 물론 학습자가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배움의 주인공인 것은 당연하지만, 기본적으로 유의미한 배움과 가르침이 있기 위해서는 학습자와 교수자간의 위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대학수업이나 고전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됐습니다.

장: 위기지학은 학습을 넘어 경험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는 위기지학의 자세를 견지하려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지속적으로 되돌아봄으로써 위기지학과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천 전과 실천 후의 차이보다도 실천하는 그 과정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위기지학에 대한 의견이 지금 세 분만 봐도 모두 다른 데요. 앞으로 프로젝트 위기가 위기지학을 목표로 가지고 나아가는데 있어, 구성원들 각자의 해석이 달라도 괜찮을까요?

양: 유교가 주자학, 성리학, 실학 등으로 나눠졌듯 기본정신이 같아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위기지학은 삶을 살아가는 나침반이지 획일화된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백: 위기지학에 대한 답이 여러가지라는 태도는 곤란합니다. 위기지학이 여러가지라면 그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위기지학에 대해 명확히 누군가 알 수 있다는 태도도 곤란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늘 공동체 안팎에서 누가 위기지학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잘 알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로부터 배움의 태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장: 공동체의 목표에 있어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 옳습니다. 인간이 본질과 세상의 이치 속에서 삶을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해석들의 결합 덕분일 것입니다.

학문은 흔히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해석 그리고 적용하기 마련인데요. 논어에 적힌 위기지학을 그대로 따라야 할지 혹은 각자의 해석을 존중해주어야 할지 구성원 사이에 의견이 분분할 것 같아요.

양: 후자의 경우를 지향합니다. 전자의 경우는 학문에 스스로를 종속시켜 스스로를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이 삶 속에서 스스로 개념정의를 하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백: 위기지학의 참뜻을 계속 추구해나가고 그것을 실천해나가야 하지만, 우리는 늘 각자의 해석에 갇혀 있습니다. 그렇기에 '난 위기지학을 하고 있어'라는 태도보다는 '난 분명 위인지학을 하고 있을 테니, 그 요소를 찾아 제거해나가겠어'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장: 위기지학의 핵심은 자세일 것입니다. 따라서 그 정의는 변할 수도 있다고 본니다. 위기지학이 자신의 본질을 밝히는 학문이라고 보았을 때, 본연의 정의와 조금 다르게 해석될지라도 중요한 건 '본인의' 해석에 따른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연의 정의를 추구하다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자리잡게 되면, 오히려 위기지학 정신을 해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본질은 밖으로부터 찾을 수 없으며, 오로지 스스로에게 달렸습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본인이 이를 실천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이로운 일인가,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가 이 질문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위기지학 뿐만 아니라 위인지학의 의미 또한 각자 생각하시는 게 다른 것 같아요. 논어에서는 위인지학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로 결국은 자기자신을 잃어버리게 함으로써 기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위인지학에 있어, 논어에서 말한 것과 같이 생각하시는 지 아니면 또다른 생각이 있으신 지 궁금해요.

양: 위인지학도 삶을 구성하는데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위기지학적 삶을 사는 게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인지학과 위기지학이 정합합을 이루는 사회가 이뤄진다면 더 알찬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역설적으로 위인지학은 위기지학을 홍보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도 않을까요?

백: 위인지학은 그 정의상 나쁜 것이기에 기피해야 합니다. 나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위인지학이 아닙니다. 위인지학은 본질상 남을 속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장: 어떠한 행동이나 행동의 결과만으로 위기지학과 위인지학의 옳고 그름을 나누려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러한 판단은 그 사람의 교육태도를 통해서만 판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인의 교육태도에 있어 잘못됨을 인정하지 않고 이를 계속적으로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삶의 태도는 충분히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많은 학문들이 실용성을 요구 받는 것 같아요. 정확한 이해 후 행동은 학문의 활성화 그리고 대중화에 걸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백: 행동 없는 학습은 공허하고 학습 없는 행동은 위험합니다. 둘은 동시에 가야 마땅합니다. 아마 행동하다 보면 학습하고 싶어지고, 학습하다 보면 행동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흐름을 자연스럽게 활용해야 합니다.

양: 후자의 경우는 학습의 개념이 애매합니다. 이를 정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다면 전자를 지향합니다. 기본적인 세상을 보는 관점이 있다면 행동을 겪으면서 위기지학을 실천하고 전파하는게 옳습니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서 당연히 학습 또한 유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장: 정확한 학습은 누가 정하나요? 과연 지금의 위기지학 개념과 정신은 이황이 주장한 것과 일치하나요? 모든 학문, 지식과 지혜는 다양한 해석으로부터 쌓여져 만들어진 산출물이지 그 자체로 진리는 아닐 것입니다.

*본 기사는 교육판 잡지 (2018년도 3월호)에 기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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