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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지학 All Is Well - 세 얼간이를 보고


‘ All is well’을 아는가? 단순히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는 바로 2009년 세계적인 인기를 끈 인도 영화 ‘세 얼간이(3 Idiots)’의 명대사이다. 영화 속에서 ‘All is well’은 ‘알 이즈 웰’이라고 발음되며 마법의 주문처럼 러닝타임 내내 등장한다. ‘모든 게 잘 될 거야.’라며 능청스러운 대사와 분위기를 자랑하는 이 영화는, 알고 보면 위기지학이라는 개념을 아주 깊이 다루고 있다.

앞서, 영화의 줄거리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 제목이 가리키는 ‘세 얼간이’는 한 일류 대학에 재학 중인 세 명의 학생들이다. 성적과 취업만을 강요하는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은 대단한 천재 ‘란초’, 아버지가 정해준 직업인 공학자가 되기 위해서 정작 본인이 좋아하는 일은 포기하고 공부만 하는 파파보이 ‘파르한’,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병든 아버지와 다른 식구들을 책임지고자 무조건 대기업에 취직하려는 ‘라주’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꿈을 좇기 위해 ‘삐딱한’ 세 얼간이가 되기로 한다. 현실이라는 벽이 늘 그들을 가로막지만, 그럴 때마다 그들은 ‘알 이즈 웰’ 이라 외치며 답을 찾아 간다.

주인공들이 부딪힌 거대한 벽은 입시와 취업 위주의 교육 제도, 그리고 지나친 경쟁 위주의 사회다. 이 거대한 벽을 상징하는 인물인 ‘대학 총장’은 신입생들을 모아 이런 말들을 한다. “뻐꾸기의 삶은 살인으로 시작해. 자연의 이치지. 경쟁하거나 죽거나, 너희들도 뻐꾸기와 같다.” 그는 수십만 건의 입학원서를 쏟아부으며 이것들이 너희가 우리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깨트린 알들이라고 한다. “기억해라. 인생은 레이스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짓밟힐 거다.” 이 말에 동조라도 하는 듯 ‘차투르’, ‘파르한의 아버지’, ‘라주의 식구’들은 삼총사의 길을 계속 방해한다.

어느 날 란초는 대학 총장에게 이러한 교육 제도가 잘못됨을 역설한다. “무슨 1위를 말하는 거죠? … (중략)… 다들 점수, 취업 그리고 미국 내 취업에만 관심이 있죠. 저희는 공학을 배우기보다는 점수 잘 받는 방법만 배우고 있습니다.” 이에 화가 잔뜩 난 총장은 란초에게 직접 수업을 해보라고 한다. 고민하던 란초는 공학 용어 사전 중간을 펼쳐본 후 칠판에 두 단어를 적는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책을 참조해도 좋고 뭘 해도 좋으니 30초 안에 이 두 단어에 대해 정의를 내려 보라고 한다. 그리고 1등과 꼴찌를 체크하겠으며 정답을 찾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경쟁이 시작되자마자 모두 열심히 답을 찾았지만, 아무도 시간 안에 해당 질문의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란초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무도 못 찾았나요? 1분 전을 한번 생각해보죠. 제가 질문을 드렸을 때 설렜나요? 호기심이 생겼나요? 새로운 걸 배운다는 사실에 흥분됐나요? … (중략)… 모두들 미친 듯이 레이스만 펼쳤죠. 이런 방식이 무슨 소용이 있나요? 만약 제일 먼저 풀었다고 해도 그게 지식을 늘게 해주나요? 아뇨. 그저 스트레스만 주죠. 여기는 대학입니다. 스트레스 공장이 아니죠. 서커스단의 사자는 채찍의 두려움으로 의자에 앉는 걸 배우지만 그런 사자는 잘 조련됐다고 하지 잘 교육됐다고 하지 않습니다. … (중략)… 저는 단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말씀드린 거예요.”

이때를 기점으로 세 명은 진정한 교육을, 나를 위한 삶을 좇게 된다.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공부를 억지로 하며 스트레스 받는 것을 그만두고,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일들을 시작한다. 아무도 그들의 장밋빛 결과를 예측하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결말은 ‘알 이즈 웰’과 같아진다. 라주는 대기업에 취직하고 파르한은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또한 란초도 발명가이자 교육자로 성장한다.

웃고 떠들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인 <세 얼간이>가 프로젝트 위기가 중요시하는 가치를 깊게 담고 있는 영화임이 여기서 드러난다. 위기지학, 즉 자기 자신의 본질을 밝히는 학문이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위기지학의 삶이 비현실적이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이 될 수도 있다. 세 얼간이가 비판했던 사회는 변함없이 흘러갔고 세 얼간이와 반대로 살아온 ‘차투르’는 ‘부’라는 목표한 바를 달성했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세 얼간이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을 가졌다는 것이다. 훗날에 세 얼간이를 만나 차투르는 그 진실 혹은 세상의 이치 앞에서 절망하게 된다.

프로젝트 위기는 차투르의 행위와 신념을 위인지학이라고 해석한다. 위기지학과 위인지학, 자신을 위한 공부와 자신을 해하는 공부. 이는 단순히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으로 구별 짓기 힘들다. 하지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건 이들의 목표이자 동기가 되어야 한다. 두 가지 물음을 던지며 영화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당신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는가? 당신의 삶 속 주인공은 당신인가?

*본 기사는 교육판 잡지 (2018년도 3월호)에 기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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