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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C+를 준 교수님의 선물


역설적이게도 나의 최고의 배움은 가장 자존심이 상했을 때 이루어졌다. 때는 2015년 2학기였다. 당시 나는 ‘프로젝트 위기’라는 교육혁신단체를 1년째 이끌고 있었다. 나의 전공은 교육과 무관했지만 교육관련 단체의 대표인 만큼 교육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교육학개론 수업을 수강했다. 처음부터 이 수업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중간고사 시험지에 교수가 가르치는 학문이 보잘 것 없는 학문임을 시사하기도 했고, C+를 받은 것에 분노해 교수와 면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 수업을 통해 내 삶의 방향성이 바뀌었다.

내가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분명 배우는 것은 즐거운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대부분 재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데 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와 관련된 제도를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한 맥락에서, ‘수업 첫날 교육이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교육이란 사회의 방향성에 대한 담론을 형성해 그 방향성에 맞게 사회가 발전할 수 있게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나름 교육학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되돌아온 교수님의 답변은 교육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교육혁신가라느니, 우리나라 교육의 희망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에 익숙했던 나에게 내가 교육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새로울 뿐 아니라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교수가 나에게 이러한 수모를 주는 이유는 그가 교육본위론이라고 불리는 신생학문을 깊이 연구했기 때문이었다. 교육본위론이라는 학문 자체가 기존의 교육학은 제대로 된 교육학이 아니라며 주장하며 자신이 교육학의 미래라고 자처하는 학문이기에, 어쩌면 내가 이야기하는 교육이 교육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당연했다.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교육본위론이라는 학계에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학문을 가르치며 교육학개론 수업시간의 절반을 할애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중간고사에 솔직하게 적은 것이 화근이 됐다. 왜 교육본위론이 주류학문이 되지 못했는지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며, 교육본위론이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나의 비판은 C+라는 점수로 돌아왔다. 교육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피드백과 함께.

나는 단단히 화가 났다. 이 교수는 자신의 학문적 취향을 학생들에게 강요할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비판을 수용할 줄도 모르는 교수인가? 만약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깨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도 살짝 있었지만 그보다는 교수의 비합리함을 지적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교수와의 면담을 신청했다.

드디어 교수실의 문을 두드렸다. 의례적인 인사말을 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 내 소개를 하고 프로젝트 위기의 교육적 사상을 소개했다. 프로젝트 위기에서 ‘위기’는 공자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부하지 말고 참된 나다움을 밝히기 위한 공부를 하라고 주장했던 사상, ‘위기지학’에서 따왔다며, 위기지학이 학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게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교수가 공감한다며, 교육에 있어서 위기지학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탐구가 교육본위론이라 말했다. 뭐시랏..?!

그렇다. 나는 착각 속에 빠져있었다. 교육은 학교라는 기관 그 자체가 아니라 서로 가르치고 배워 함께 세상을 이해해나가는 인간의 행위다. 그러한 맥락에서, 학교에서 참된 가르침과 배움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 삶 속에서 그러한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본질로부터 시작해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를 떠나 우선적으로 교육이란 행위가 무엇인지부터 규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름이 시사 하듯이, 기존 교육학은 학교를 중심으로 다양한 현상들을 분석했다면 교육본위론은 인간의 교육이라는 행위 그 자체를 탐구하는 학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학문은 정말 내게 큰 가르침을 줄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은 후, 나는 엄청난 교육본위론의 애호가가 되었다. 이와 관련된 수업들은 물론 관련 논문들도 보이는 대로 찾아보고, 교육본위론의 창시자인 장상호 교수도 만났다. 그리고 이러한 배움은 단체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교육본위론을 주변 친구들에게 가르쳐주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참말로, 교육본위론을 알게 된 것은 정말 내게 소중한 선물이다.

교육본위론은 이러한 나의 배움의 경험도 충분히 이론적으로 설명해낼 수 있다. 처음에 교수에 대해 저항심을 느낀 것과 같이, 배우는 사람은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었던 것을 해체해야 하기에, 배움에 대해 저항심을 가지기 쉽다. 이러한 저항심을 교육본위론에서는 저압제라고 이야기한다. 또 내가 교육본위론을 배우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나의 일상적 삶이 바뀌었듯이,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총체적인 삶의 변화를 뜻하며, 자신이 무언가를 깨달은 후 주변에 이를 가르치고자 하는 것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다.

아쉽게도 교육본위론은 여전히 별로 알려진 학문이 아니다. 그래서 국내의 소수 대학에서만 이를 가르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교원대학교, 서강대학교 등이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정말 신기한 것은 교육본위론이 우리나라에서 창시됐다는 것이다. 창시자인 장상호 교수를 포함해 교육본위론을 연구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교육원리학회도 참고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나 또한 교육전문미디어 교육판에서 교육본위론을 재포장해 연재물bit.ly/eduboard-redefinition을 기재하고 있다.

*본 기사는 교육판 잡지 (2018년도 2월호)에 기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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