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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재미 없을 때

*본 기사는 교육판과 프로젝트 위기 홈페이지 통합 이전 기사로, 교육판 홈페이지(구)에서 더 깔끔하게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악기를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배운 사람이 있으면 어쩌면 나의 경험에 공감할 지도 모르겠다. 나는 초등학교때 꽤 오래 악기를 배웠다. 피아노도 4년정도 배웠고 바이올린도 2년정도 배웠다. 그런데 그것이 피아노이건 바이올린이건 관통하는 공통적인 경험이 있다면, 레슨이 끝나고 선생님이 숙제를 내줄 때 선생님과 했던 기싸움이다. 연습노트에 날짜를 적은 다음 선생님이 동그라미를 그려 나간다. 동그라미가 5개 정도 그려질 때부터 기싸움이 시작된다. 선생님이 동그라미 하나를 더 그린다. 나는 선생님을 애절하게 쳐다본다. 거기서 멈추면 다행이지만 보통 7~10개의 원을 그리곤 했었다. 각 동그라미는 1회 연습을 상징한다. 집에 가서 연습 한번 할 때마다 동그라미 하나를 정성스럽게 색칠하거나 멋지게 체크표시 하면 된다. 선생님이 동그라미를 많이 그릴수록 나는 연습을 많이 해야하는 것이고, 초등학생에게는 그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없다. 기싸움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서는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총 7번 연습해야 한다면 그중 몇번 연습해야 선생님한테 그래도 연습한 것에 대해 의심받지 않을 수 있을까? 4번? 5번? 이와 관련된 합리화가 어느정도 되면 나머지 동그라미는 아무도 모르게 연습하지 않고 공허하게 채워나간다. 내가 이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사실 너무 그것이 후회되기 때문이다. 중학교 음악시간이었다. 1인 1악기라고, 수업시간에 한명씩 앞으로나와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악기를 선보여야 했다. 외부시선에 예민한 중학생에게 사실 그만큼 자신의 매력을 발산할 만한 시간도 없을지라. 그래서 나는 피아노를 치려고 했는데, 막상 치려고 하니 칠 수 있는 곡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제서야 그 수행평가만을 위해 과외를 받아 연습했다. 그런데 그때 피아노연습은 고난과 고통이 아니라 기쁨과 성취감이었다. 그리고 딱히 굳이 동그라미를 그리지 않아도 충분히 연습을 많이했다. 그때 연습했던 그 곡은 거의 10년이 지난 이 시점까지 칠 수 있다. 여기서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은 초등학교때의 피아노 연습인가 아니면 중학교때의 피아노 연습인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공부인가 아니면 공부 그 자체의 가치를 체험하는 공부인가? 무언가를 공부할 때, 그것이 선생님의 인정이던간에, 시험점수이던간에, 아니면 취업이던간에 수단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그 공부는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죽은 공부이다. 하지만 공부의 소재 그 자체의 가치를 체험하고 내게 아직 발현되지 않은 잠재성을 키워가는 자기실현적 공부는 재미있고 뜻깊고 심지어 타인에게 기쁨을 준다. 이 두가지 공부의 차이는 환경적인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나 스스로의 마음가짐이다. 둘 중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는 자기만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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